선과 악의 기준
위라라트네(W.G. Weeraratne) 지음/ 마성 옮김
어떤 종교에서든 선(善, good)과 악(惡, bad) 혹은 옳음(right)과 그름(wrong)의 기준은 그 종교의 근본적인 교설에 전적으로 의존하는데, 그것은 곧 사물의 기원과 그 본성 그리고 그 종교에 의한 삶의 목표와 이상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불교에도 적용되는 진실이다. 인도의 고대 리그 베다(Rigvedic) 시대에서의 사람들은 해(surya)·달(candra)· 바람(vayu)·새벽(usas)· 땅(prithivi)과 같은 자연의 힘을 통제하는 신성(神性)이 있다는 것을 믿었다. 그리고 그들은 아침에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과 같은 이 세상의 규칙적인 법칙이 있다는 것도 믿었다. 또한 사람들은 그들의 행동 양식도 그에 따랐다. 그 시기에는 이 사물의 법칙을 당시에는 리따(rta)라고 불렀다.[1] 이 세상의 법칙에 따라서 사는 것이 삶의 올바른 길이나 선(善)이라고 생각했으며, 이 명령을 어기는 것을 그름이나 악(惡)이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 자연력을 지닌 신(神, god)이 그들을 지켜주고, 그들의 의식 절차를 감독하는 것으로 믿었고, 세계의 법칙 역시 당시 가장 힘있고 중요한 신으로 간주된 바루나(Varuna)라고 부르는 신의 관리하에 있다고 믿었다. 그 신은 세상의 법칙과 일치하여 사는지 아닌지를 관리했는데, 그 법칙을 어긴 사람들에게 벌을 주고 그 법칙에 따라서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상을 주었다.[2] 그러나 사람들은 가끔씩 물소 젖의 버터기름, 버터, 응유(凝乳)와 이따금 동물들과 같은 중요 음식을 바루나(Varuna)에게 제물을 바침[供犧]으로써 그들의 적극적인 죄[作爲]와 소극적인 죄[不作爲]를 보상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그 사회에서 선과 악의 기준은 이 신의 심판[裁可] 사항이었고, 사람들은 이성적인 기초 혹은 이해 없이 대부분 기계적으로 그저 이에 순응했다. 시간이 계속 나아가자 그 밖에 특히 공희(供犧)가 우위의 입장에 서게 되었던 브라흐마나(Brahmana) 기간이 될 때까지 공희(供犧, yagna)에 더욱 더 중점을 두고 애착을 가지게 되었다.[3]rta의 이념 혹은 세상의 법칙은 업(業, karma)사상으로 바뀌었는데, 이것은 브라흐마나(Brahmana) 성전에 저장된 의례(儀禮)의 자세한 내용에 따른 공희의 바른 실행에 불과한 것이다. 세상의 법칙에 순응하는 것은 선이고, 이에 반대하는 행동은 악이라는 간단한 이념을 대부분 잊어버리고, 오직 공희의 바른 실행만이 강조되었다. 이 기간동안 사람들은 공희를 실행했을 때 신으로부터 원했던 것을 얻을 수 있는 충분하고 강력한 에너지와 같은 것을 가져온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신 자체보다도 공희가 더 중요하게 되었고, 공희는 당시 사회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활동이 되었다.[4] 브라흐마나 성전에서 추천된 여러 가지 공희를 실행하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불행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들의 생애동안 많은 공희를 실행했다.[5] 법칙과 규칙에 따라 모든 것이 끝난 여러 가지의 공희를 착하고 칭찬할 만한 것으로 여겼다. 공희를 위해 이로운 동물에게 고통을 주거나 간혹 죽이는 것조차 선행으로 여겨졌으며, 사람들은 그러한 제물로 잔인한 고통의 희생이 되는 이로운 동물들이 그와 같은 죽음을 당하는 것은 뒤에 천국의 기쁨을 얻는 행운이라고 믿었다.[6] 이 공희에 중점을 두다보니 때때로 신을 위해 인간까지 잔인하게 죽였다.[7] 공희의 효험을 믿는 것이 우세하여 모든 인도주의적이고 합리적인 고려는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모든 것은 신의 이름으로 행해졌고, 공희는 옳고 바람직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높음과 낮음 같은 여러 가지 범주로 나뉘었고, 약간의 사람들은 모든 힘, 즉 쾌락과 안락을 즐기는데 쏟았다. 그 동안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본적인 인간의 선행조차 부정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창조자가 바라는 것이라고 믿었을 뿐, 그것이 부당하거나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8] 그래서 브라흐마나(Brahmana) 시대에는 창조설과 공희의 효험을 믿는 것이 선과 악의 기준이었다. 우주적 이데아인 모든 삶의 존엄성이나 모든 인간들의 자유와 평등은 그 문화에서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우리는 알라라 깔라마(Alara Kalama)와 웃다까 라마뿟따(Uddaka Ramaputta), 그리고 유명한 육사외도(六師外道, six heretical teachers) 가운데 앞의 다섯 고행자들의 가르침에 있어서 선악의 기준도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육사외도는 붓다와 동시대의 사람들로서 전통적인 유일신론(唯一神論)의 형태를 버리고 새로운 종교를 창시한 분들이다. 그들은 인간을 심리적으로 높은 위치로 향상시킬 수 있는 정신적 훈련 방식을 가르쳤다.[9] 그러나 사물의 진실한 본성을 이해하도록 만들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는 사실은 별문제로 하더라도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의 교설에 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육사외도(六師外道)가운데 다섯 고행자(Pancavaggika)들은 윤회(輪廻, Samsara)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으로써 극도의 고행주의를 신봉했으며, 함께 하는 사회적 생활을 몹시 싫어했다.[10]그래서 그들의 종교교리에는 사회에 관한 가르침을 가지고 있지 않다. 육사외도 중에서 처음 4명, 즉 푸라나 깟싸빠(Purana Kassapa), 막카리 고살리(Makkhali Gosali), 아지따 께싸깜발린(Ajita Kesakambalin), 그리고 빠꿋다 깟짜야나(Pakudha Kaccayana)는 하나 혹은 다른 종류의 결정론자(決定論者)였으며, 사람들에게 솔선하는 것도 부정하고 함께 하는 도덕성도 거절했다.[11] 그러므로 그들의 가르침에서 어떤 선과 악의 기준에 대해 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다섯째 산자야 벨라띠뿟따(Sanjaya Bellatthiputta)는 자기 자신의 교리는 가지고 있지 않았던 회의론자(懷疑論者, amara vikkhepavadin)였다.[12] 그러므로 그는 옳음과 그름 혹은 선과 악의 문제에 대해 대답을 제시해 줄 수가 없었다. 니간타 나타뿟따(Nigantha Nathaputta) 역시 다른 종류의 결정론자로 불려질 수 있지만[13] 그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는 수많은 개인적 영혼의 존재를 믿었다. 개인적 영혼은 영원히 변치 않지만 각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영혼과 자기 자신의 행위로 쌓여진 업물질(業物質, karmic matter)에 의해서 윤회에 묶여 있다. 그의 가르침에 의하면 해탈(liberation)은 극도의 고행주의의 실천과 간혹 죽음에 이르러 새로운 행위를 짓지 않으므로 도달할 수 있는 업물질인 영혼의 자유에 의해서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14] 윤리적 체계로서는 붓다의 가르침과 니간타 나타뿟따의 가르침 사이에는 유사한 점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다섯 가지 맹세(vow or vratas),[15] 즉 죽이지 않는다, 거짓말하지 않는다, 훔치지 않는다, 성교를 삼간다, 세속적인 모든 흥미를 포기한다. 이러한 것들은 나중에 오계(五戒)의 단서가 된다.[16] 다시 말해서 살생을 삼간다(不殺生),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을 삼간다(不偸盜), 부정한 성행위를 삼간다(不邪淫), 거짓말을 삼간다(不妄語), 취하게 하는 술이나 마약 등을 삼간다(不飮酒) 등이다. 하지만 이러한 맹세를 지키는 이유가 니간타 나타뿟따의 체계에서는 보다 자기 중심적이다. 그러므로 단지 이들 맹세의 부정적인 양상이 강조되었다. 그들은 살아있는 것들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는 것을 삼가고자 기대한다. 왜냐하면 행위를 함으로써 무거운 업물질이 일어나 사람의 영혼을 보다 무겁게 하고 윤회의 속박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살아있는 것들을 해치지 않는 극단적인 실행에 종사한다(ahimsa). 살아있는 것이란 유정(有情) 뿐만 아니라 나무와 식물도 또한 포함되며, 이것들은 어떤 종류의 영혼을 소유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17] 게다가 업설은 행위에는 현재와 미래에 반응이 있다는 일반적인 교훈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르다. 자이나교에 의하면, 모든 행위는 그것이 의도적이든 또는 그 반대이든지 반응 혹은 결과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만약 당신이 길을 걷고 있는 동안 당신도 모르는 사이 살아있는 생물을 짓밟았다면 그 생물이 파멸되거나 죽게 되는 원인의 죄를 범한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그 결과로 고통을 받게 된다. 다시 만약 당신이 물 혹은 공기 중에 있는 짧은 생명을 죽였다면, 당신은 다시 죄를 범한 것이다. 자이나의 수행자들은 엄격한 채식주의자들이고, 물 여과기를 가지고 다니고, 천조각으로 그들의 임을 가리고 다니며, 그들이 움직이는 동안 전방의 길을 쓸고, 우기(雨期)동안 자유스럽게 돌아다니는 것을 삼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18] 그 밖의 맹세에 대한 것도 같은 입장이다. 하지만 지금 논의하게 될 불교에 있어서의 선 혹은 악으로 결정되는 기준 혹은 기본과는 그 견해가 매우 다르다. 이 장을 시작하면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불교에 있어서 선과 악의 기준은 세 가지 사항과 관련되어 있다. 즉 사물의 기원과 그 본성에 대한 관점, 삶의 목적과 목표에 대한 관점, 그리고 인간에 대한 관점이다. 첫째, 사물은 인과관계로 상호 관련이 있으며, 조건에 의해 생성되기 때문에 무상(無常)하고, 연기법에 의거하며 쇠퇴하고 파괴된다. 둘째,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존재해 있는 이 삶의 과정에 대한 가르침이다. 모든 괴로움을 완전히 소멸시키려면 삶의 괴로움이 끝나야만 된다. 이것을 끝내려면 오직 갈애(渴愛, tanha)라고 불리는 윤회(samsara)의 근본 원인을 소멸시켜야 한다. 갈애는 오직 사물의 본성에 대한 통찰의 향상에 의해 소멸될 수 있다. 사물의 본성에 대한 통찰은 오직 집중한 마음의 계발에 의해 이룰 수 있다. 마음의 집중은 계율 혹은 덕의 실천에 의해 마음의 모든 편견의 극복에 의해서 가능하다. 마음의 훈련은 인류애를 일으키는데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행위인 사회생활과 관계가 있다. 마지막으로 요컨대 하나를 위한 선이 전체를 위한 선이 되고, 전체를 위한 선이 하나를 위한 선이 무엇인가에 대한 하나의 관점이 된다. 불교에 의하면, 인간의 행위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몸으로 짓는 행위(kayika kamma, 身業)·입으로 짓는 행위(vacasika kamma, 口業)·뜻으로 짓는 행위(manasika kamma, 意業)가 그것이다.[19] 인간의 세 가지 행위는 윤회에 헤매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으며, 선행은 이 세상에서 궁극의 진리를 실현시키는 이익(samparayahita) 뿐만 아니라 현재의 삶을 기쁨과 행복으로 만들어 준다(ditthadhammasukha, 現法樂). 그리고 그 반대로 가는 모든 행위는 악이다. 불교에 있어서 선과 악을 나타내는데 사용된 여러 가지 술어들이 있다.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된 술어는 꾸살라(kusala)와 아꾸살라(akusala)이다.[20] 꾸살라(kusala)라는 단어는 '능숙한', '현명한', '유능한', '노련한'의 의미로 사용되었고, 아꾸살라(akusala)는 그와는 반대를 나타낸다.[21] 주석자(註釋者) 담마빨라(Dhammapala, 法護)는 이 술어가 '악을 몰아낸다는 의미에서 꾸살라(Kusala)라고 불렀다.'(kucchita salama atthena kusalam)라고 정의를 내린다.[22] 불교에서 선과 악을 나타내는 이들 두 술어의 선정은 매우 의미심장한 것이다. 악을 행하거나 삶을 자기본위로 사는 것은 매우 쉽다.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자연적인 성향이라고 부른다. 집착과 증오는 누구나 힘들이지 않고 가져오고, 무지는 모든 사람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다. 편견 없이 사물을 바라보고, 우호적으로 느끼고, 집착을 극복하는 길은 매우 어렵고, 약간의 노력이 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매우 중요한 것은 탐욕, 성냄 및 어리석음[無明]을 약화시키는데 기여하는 모든 행동은 꾸살라(kusala, 善)이고, 그 반대는 아꾸살라(akusala, 惡)라는 것이다. 선과 악을 나타내는데 사용된 두 가지 다른 술어는 뿐냐(punna, 福)와 빠빠(papa, 惡)이다.[23] 이것들은 간혹 공덕(功德, merit)과 죄(罪, sin)로 번역되기도 했다. 주석자 담마빨라(Dhammapala)는 뿐냐(punna)를 '마음을 정화하고 가득 차게 한 것'(santanam punati, visodheti)이라고 정의를 내린다.[24] 이 술어를 다룬 팔리성전협회(PTS) 사전에서 뿐냐(punna)는 언제나 천상의 재생과 미래의 축복 받는 상태의 기초와 조건, 과거생에 쌓여진 공덕에 의존하여 즐김과 지속기간으로 묘사되었다.[25] 이러한 의미에서 빠빠(papa)는 '불행의 상태에서의 고통의 기초와 조건'으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팔리 정전(正典)에서의 이들 두 술어의 쓰임새는 불교의 업설과 주로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 그가 행한 선과 악에 따라서 미래의 존재 상태가 결정되는 심리학적인 세력이다. 이와 같이 마하망갈라(Mahamangala sutta, 大吉祥經)[26]에서도 사실 선업을 쌓아 축적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 훌륭한 일이라고 말한다. 이 두 술어가 불교 -- 보다 합리적인 근거에 의거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해서는 안되는지 사이를 구별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 에서 보다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고 진술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자이나교와 불교의 업설을 비교함에 있어서, 불교의 업설에서 기본적으로 다른 점은 의도(意圖, centana)적인 행동이 중요하며, 개인적으로 업력이 발생하는 한 그리고 자신의 심리적 조작인 관심과 의도 혹은 흥미는 모두 중요하며, 이 점에서 선행과 악행은 단지 이것을 근거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앙굿따라 니까야(Anguttara Nikaya, 增支部)의 마하박가(Mahavagga, 大品)에서 붓다는 승려들에게 말한다. "비구들이여, 내가 행위라고 말했을 때, 나는 의도를 의미한다(cetanaham bhikkhave kammam vadami)"[27] 비록 어떤 사람이 의식적으로 한 것이라도 즉 어떤 동기나 의지를 가지고 한 말이든 혹은 생각이든 그것은 실행한 행위에 따라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어떤 힘을 말하는데, 그것은 즉시 여기서 그리고 지금, 내생이거나 어떤 그 다음 생에서 나타날 수 있다. 또한 담마빠다(Dhammapada, 法句經)[28]에서 말하길, "마음이 모든 행동의 앞선 원인이며, 마음이 최상이고, 모든 것은 마음에서 일으킨다." 나쁜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은 나쁜 결과[惡果]로 일어나며, 좋은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은 좋은 결과[善果]로 일어난다. 그러므로 탐심(lobha)과 진심(dosa)이거나 치심(moha)이 동기가 된 행동은 언제나 악(akusala)이며, 그와는 반대인 것이 동기가 된 행동, 즉 탐심이 없는 것(無貪, alobha), 성냄이 없는 것(無瞋, adosa), 어리석음이 없는 것(無痴, amoha)은 언제나 선(kusala)이고,[29] 위에서 언급한 선이나 악의 뿌리와도 연결되지 않는 그러한 행동은 중립적인 행동, 즉 무기(無記)인 것이다. 팔리어 용어에서 아로바(alobha)는 단지 탐욕이 없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해야만 한다. 이것은 탐욕이 없음[無貪]에 적극적인 특성, 즉 희생의 정신 혹은 연민(karuna)을 낳는 관용(caga, 捨)을 더했다는 의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도사(adosa, 無瞋)는 증오가 없음에 우호적인 생각과 결합한 동정(同情) 혹은 자애(metta)를 의미하고, 아모하(amoha, 無痴)는 어리석음 없음에 적극적인 측면이 결합된 것, 즉 지식 혹은 지혜(nana)를 뜻한다. 그러나 이러한 규칙에 제외되는 것이 있을 수 있다. 일반적인 규칙은 좋은 의도가 동기가 된 행동은 좋은 결과를 생기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간혹 겉보기에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한 것이 엄청난 재난의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잠자는 주인을 귀찮게 하는 파리를 좇아버리기 위해서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주인의 두 코를 자른 헌신적이었던 원숭이의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단적인 예로 인용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원숭이의 행동은 좋은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다. 즉 그의 주인이 잠을 잘 자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서의 동기는 지혜(nana)와 결합되지 못했다. 이것은 실제로 무슨 결과를 초래할지를 모르는 무지에 이끌렸던 것이다. 그래서 의도가 행위의 본질을 결정함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말했을 때, 그것은 실제로 의도가 지혜와 결합하느냐 혹은 무지와 결합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개인과 자신의 업(kamma)에 대한 심리적 결정에 대한 관점으로부터 의도는 모두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와 개인의 심리적 결과의 상호작용의 관점으로부터 의도는 중요할 뿐만 아니라 행위의 결과나 과보는 똑같이 중요하다. 이 점에서 선이나 옳음으로 판단되는 행동은 행위자나 다른 사람에게 조금도 해로움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 그것은 행위자나 다른 사람에게 적극적인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암바라티까-라후로와다 숫타(Ambalatthika-rahulovada sutta, 敎誡羅?羅菴婆藥林經)[30] 에서는 이 측면을 자세하게 논의했다. 붓다는 자신의 젊은 아들 라훌라(Rahula)에게 말씀했다. "라훌라야, 거울은 무엇에 쓰는가" 라훌라는 자신의 얼굴을 비추어 보는데, 거울이 쓰인다고 대답했다. "그렇다." 붓다는 계속해서 "너는 이전에 네가 행한 말과 뜻과 몸으로 행한 어떠한 것도 비추어 보아야 한다. 비추어 보았을 때, 만약 네가 숙고한 행동이 너에게도 해가 되지 않거나 다른 사람에게도 해가 되지 않고, 또한 너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적극적으로 이로운 것이라고 느낀다면, 그와 같은 행동은 선(kusala)으로 간주해도 될 것이며, 수행해도 될 것이다. 반대로 네가 비추어 보았을 때, 만약 네가 숙고한 행동이 너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이익이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너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해로운 것이라고 느끼면, 그와 같은 행위는 악(akusala)으로 간주해야 하며, 단념해야만 한다. 위에서 언급했던 논의에 대한 기본이 되는 규칙은 선이나 악으로 여겨지는 어떤 행동을 판단하는 기준을 7가지 범주로 공식화 할 수 있다. 1. 행위자에게 해로운 행동이지만, 나머지에게 이익을 주는 것은 악행이다. 여기서 그 이상의 문제가 제기된다. 그것은 어떤 수단을 채택하든 행위의 본질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생각은 여기서 검토되어져야 한다. 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행위의 본질을 결정할 때 수단은 물론 결과도 동등하게 중요하다. 전술(前述)한 논의에 따르면, 어떤 해로운 것일지라도 행위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이거나 다른 사람에게 간혹 매우 좋은 결과에 도달하기도 하고, 해로움이 단지 결과적으로 선행에 도달하기 때문에 무시할 수가 없다. 채택된 수단과 도달한 결과는 독자적으로 판단해야만 한다. 그러나 다시 말해서 개인은 자신의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해야 한다. 어렵게 발생할 경우에는 간혹 그것을 해야 할지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인지를 결정하고자 할 때는 중도(中道)를 따라야 한다. 예를 들면, 설사 불교에서 나쁜 것으로 여기는 거짓말을 하더라도, 개인과 집단에 악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때에 조금이나마 거짓말을 하여 여러 생명들을 살리거나 많은 사람들에게 적극적인 선행이 되거나 또한 그러한 거짓말이 어느 부분에도 어떤 명백한 손해의 원인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숲속의 길을 가고 있는 어떤 남자가 머리카락이 헝클어진 채 숨을 헐떡이며 복장이 흩어진 상태에서 달리고 있는 어떤 여인을 우연히 만났다. 그리고 그는 여인이 가까운 덤불 속에 몸을 숨기려는 것을 보았다. 마침 그가 몇백 야드 앞으로 나아갔을 때, 그는 잔인하게 보이고, 몹시 화가 나서 손에 뾰쪽하고 날카로운 칼을 들고 여인이 도망간 쪽으로 달려가는 어떤 남자를 보았다. 그 남자는 여행자를 보자말자 멈추어 서서 그에게 그 방향으로 달아나고 있던 어떤 부인을 보았는지를 물었다. 여행자는 그가 여인을 죽이거나 육체적인 상해를 입힐 목적으로 그 여인을 추적하고 있다는 것을 그 사람의 형색으로부터 알아차렸다. 만일 여행자가 진실을 말하게 된다면, 그 여인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며, 또한 살인자는 자연적으로 그러한 결과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여행자가 그 상황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을 자제하게 된다면, 다시 말해서 그가 그 상황에서 이로운 거짓말을 하게 된다면, 이것은 여인의 목숨을 구하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중대한 어려움에 떨어지는 것을 예방할 수가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의 거짓말은 정확하게 여행자에게 해로운 것이 아니지만, 동시에 중대한 범죄를 예방한다. 우리는 붓다조차도 다른 사람들에게 보다 큰 이익을 행하기 위해서 그와 같은 방법에 의지했다. 우리는 죽은 아들의 시체를 껴안고 붓다께 찾아왔던 여인을 기억할 것이다.[31] 그 여인은 죽은 자식을 살려달라고 붓다께 간청했다. 그 때 붓다께서는 '태어난 자에게는 반드시 죽음이 있다'(Jatassa nama niyato maccu)라고 꾸밈없는 진리를 그 여인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대답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대신에 그녀가 이전에 죽음이 일어나지 않았던 어떤 집에서 겨자씨 한 움큼을 가져온다면, 죽은 자식을 살려주겠다고 그는 매우 조용하게 말했다. 그래서 그 여인은 겨자씨를 찾으려 이집저집으로 다녔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으며, 그녀는 예전에 모든 집에서 죽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마침내 그 여인은 이것이 자신에게만 생긴 불행이 아니며, 죽음은 태어난 모두에게 일어나는 매우 자연적인 사건임을 깨닫게 되었다. 난다의 이야기,[32] 이른바 고귀한 신분이 약속되어 있던 싯닷타 왕자의 배다른 동생, 난다가 종교생활에서 멀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재판 역시 또 다른 그와 같은 사건이다. 보다 많은 예증은 {方廣大莊嚴經(lalita-vistara)} 및 {妙法蓮華經(Saddharmapundarika sutra)}[33]과 같은 불교 범어 자료에서 볼 수 있다. 전체의 {방광대장엄경}은 인간으로서 세상에서 노닐었던 우주적 진리 그 자체일 뿐인 초인적인 붓다는 당장 훌륭한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이며, 사실 그는 태어나지고 않았으며 죽지도 않았다고 우리들에게 알려주는데 헌신하고 있다. 히나야나(Hinayana) 혹은 소승(小乘)은 미묘한 대승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신적 능력이 낮은 사람들을 단지 만족시키기 위해서 붓다께서 설법했던 것이며, 그 소승은 한쪽에 치우친 진리에 불과하다라고 {묘법연화경}은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다.[34] 이러한 방법을 방편(upaya kausalya)이라고 부른다. 즉 악의 없는 속임 방법은 긴급한 재난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한다. 그리하여 나중에 올바른 길로 들어설 수 있다. 올바른 것과 나쁜 것을 결정하는데 다른 방법은 맛지마 니까야(Majjhima Nikaya, 中部)[35]의 아빤나까 숫따(Apannaka sutta, 無戱論經)와 아빤나까 자따까(Apannaka Jataka, 無戱論 本生譚)[36]에 설해져 있다. 이러한 방법은 진리 혹은 사물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방법(ekamsika, aviruddha, niyyanika)이라고 불렸다.[37] 이러한 방법은 대개 선행과 악행의 효력과 신(神)의 존재와 같은 종교적 문제들에 관해서 무엇을 믿고 받아들여야 하며, 무엇을 믿지 않고 거부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데 서술되었다. 이것들은 그때까지 사람들이 진리로서 무엇이 유익한 것인지 받아들이기 위해서 행해야 하는 것에 대한 보다 높은 지혜의 계발 이후의 이해와 확인을 하기 위한 문제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보통의 사람들은 형벌의 두려움을 통해서 반사회적 행위를 금해야겠다고 결심하며, 그들은 내세에서의 부와 번영 및 행복을 기대하여 선을 행하기로 결정한다. 이 경우에 있어서 불교는 선행과 악행의 효과를 믿기보다는 그들이 선을 행하고 악행을 스스로 피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들의 복지와 행복은 물론 다른 것도 결과로 간주한다. 붓다는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이 고려한 선을 행했을 때, 그것은 두 가지 점에서 이익이 있다고 지적했다. 첫째로 그와 같은 사람들은 현자와 좋은 사람의 칭찬을 받을 것이며, 그들은 존경받게 될 것이며, 그 결과 그들은 명예와 존경을 받고, 어느 곳에서나 훌륭하게 대접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처럼 비록 그의 믿음이 잘못된 것일지라도 그의 행위에 관해서는 어떠한 손실도 없다. 다른 한편 만일 그의 믿음이 진실이라면 그의 행위는 지금 여기서 이익을 가져다 줄 뿐만 아니라 또한 내세에서도 이익을 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아빤나까 자따까[38]의 설화에 실례가 있는데, 그곳에 사막을 가로질러 갔던 여행단이 물을 담은 용기를 운반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도중에 몇 마일밖에 차가운 물로 가득한 큰 연못이 있고, 물은 청결하며, 어렵게 물통을 운반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던 악마에게 속았다. 여행자들은 악마의 말을 믿고 물통을 비우고 나서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악마의 말과는 반대로 그곳에는 연못이 없었다. 그들은 크다란 갈증 속에서도 여행을 진행했다. 결국 모두 악마의 먹이가 되고 말았다. 그것을 실행했던 다른 그룹도 같은 악마를 만났다. 그들도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악마를 믿지 않고 물을 운반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만약 악마의 말이 진실이라면 연못 근처에서 물통을 비우고 연못에서 물을 마시고, 그 연못에서 다시 깨끗한 물로 채울 것이다. 만약 그의 말이 거짓이면 가지고 있는 물로 마시고 갈증을 풀 수 있다. 그들은 언제나 그것을 가져야 된다는 생각을 일으켰다. 이러한 방법으로 그들은 사막을 건너는데 성공했고 안전하게 자기들의 길을 갈 수 있었다. 선인지 악인지를 결정하는 또 다른 접근 방법이 아누마나 숫따(Anumana sutta)[39]에 설해져 있다. 이 경에 어떤 사람이 무엇을 해야 할지 혹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하는데 그 기준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을 것을 삼가야 한다고 말했다. 논의는 다음과 같다. 즉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으며, 그를 미워한다와 같이 이러이러한 사람은 악을 마음에 두고 있으며, 악의 영향 아래 있다. 마찬가지로 만일 나 역시 악을 마음에 품게 된다면, 그리고 나를 지배하고 있는 악의 생각을 허용한다면,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러한 반성으로, 누구나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악의 생각을 뿌리 뽑고자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기 자신을 높이고 남을 헐뜯는 이러이러한 사람과 그의 방법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만일 내가 같은 일을 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이와 같은 방식의 생각으로 자기 자신을 높이고 남을 헐뜯는 것을 삼가지 않으면 안된다. 이 논의는 성냄, 자만, 질투 등과 관련된 것이 계속되고 있다. 벨루드와라 숫따(Veludvara sutta)[40]는 같은 이념을 약간 다른 방법으로 표현했다. 이 경에서는 다음의 고려할만한 어떤 사항들을 피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나는 날기를 원하지 죽기를 원치 않는다. 나는 행복을 갈구하고 괴로움을 원망한다. 이러한 존재를 만일 어떤 사람이 나를 죽인다면, 내가 좋아하거나 즐거워하는 것을 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만일 내가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며 행복과 쾌활하기를 원하고 괴로움을 혐오하는 다른 사람을 죽인다면, 이것은 분명히 그가 좋아했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에게 즐거움과 좋아함이 아니며, 도한 다른 사람에게도 혐오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즐거움과 좋아함이 아닌 것이 나에게 행해졌던 그와 같은 것을 어떻게 내가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이 심사숙고한 다음, 자기 스스로 다른 사람을 죽이지 않고, 죽이기를 다른 이에게 고무시키지 않으며, 살생과 생명에 상해를 야기하는 것을 삼가는 것을 칭찬하는 말을 해야만 한다. 도둑질·관능적인 품행[간통]·거친 말·중상하는 말·험담 등과 같이 일반적으로 악으로 용인된 다른 것들에 관한 같은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아직 언급하지 않은 다른 행위의 윤리를 판단하는 기준, 즉 지혜로운 사람이 칭찬하는 것이거나 비난하는 것에 대하여 언급할 필요가 있다.[41] 멧따 숫따(Metta sutta, 慈悲經)[42]에서는 현자의 비난과 불찬성의 결과를 초래하는 사소한 것조차도 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아빤나까 숫따에서도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해서는 안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서의 그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정신적으로 매우 성숙하지 못하고 지적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권장된 기준으로 보인다. 사회생활을 영위함에 있어서 사회에서 평화스럽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각 개인이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들이 있다. 그리고 그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결정할 수 없을 때, 그는 그 사회에서 현자나 훌륭한 사람으로 인정된 사람의 예를 따라야만 한다. 결론적으로 위에서 논의했던 관념의 기초를 이루는 근본적인 개념은 인간은 모든 생물 가운데 최상이며, 그러한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하며, 생명은 모든 유정(有情)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며, 자신과 모든 사람들의 행복에 이르는 행위를 누구나 각자가 수행해야만 된다. 또한 모든 사람들은 여하튼 사회에서 평화를 방해할 수 있는 행동들을 삼가야만 한다고 다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끝> Notes: 1) ERE. Vol. 12. p.603. [Return to Text]
Updated: June 18,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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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만 들으시는게 ^^;;
2편입니다.
목소리만 들으시는게 ^^;;
1편입니다.
무엇보다 이 행사를 기다렸던 이유는, 바로 조엘 스폴스키 아저씨가 오기 때문이였습니다 :)
우선 각 부스의 모습부터 보시죠
NHN부스입니다.
플래쉬의 달인이였나? 아무튼 플래쉬 게임으로 경품 같은 것을 주나봅니다.
전 참여는 못했습니다. ㅎㅎ
다음 부스입니다
블로그에 위젯을 달면 선물을 준다라고 들은거 같은데..
다른 분과 인사한다고 가보지 못했습니다..
야후 부스입니다.
식빵과 잼 그리고 포도주스를 나눠주더군요.
잘먹었습니다. :)
오페라 부스입니다. :)
마이크로소프트 부스 옆에는 엑스박스용 기타 히어로(?)가 있었습니다.
한번 해볼까 했지만, 옆에서 보는 눈들이 덜덜덜
이렇게 왔다 갔다 하다가..
헉!!! 이게 누구입니까!!
조엘 아저씨가 오신겁니다.
에이콘 부스에서 조엘 아저씨를 반겨주시더군요.
냉큼 한장 찍었습니다. ( 옆분은 에이콘 부사장님이십니다 :-) )
저와 불과 2~3미터 떨어진 곳에 계셨는데,
범접할수 없는 포스가 느껴지더군요 ..
얼쩡 거리다가 용기를 내서 사진 한장만 같이 찍어 주세요 ~ 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
드디어 !!!
같이 사진을 찍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 사진 찍어주신 오랜친구 누님 감사했습니다~ 인사도 못했네요^^;)
조엘 아저씨 세션을 기다리며 다시 행사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위젯 관련 세션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표철민님의 발표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애플의 위젯 활용방안에 대해서 말씀하시더군요.
아이폰, 아이팟 터치의 앱스토어 이야기말이죠.
국내에서도 위젯이 활성화가 되려면 큰 기업들이 선두를 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개인 개발자들은 위젯을 안 만든다라고 하시더군요. ㅎㅎ
위젯의 단점에 대해서도 말씀 하셨는데,
표준의 부제, SDK의 범람, 어딜가나 시계, 달력 뿐 ( 동감입니다 ;;)
그리고 한국에서 위젯 생태계가 조성될까? 이였습니다.
사진이 흐릿하게 나왔군요.
그 다음 발표는
오페라 소프트웨어 조만영님께서 하셨습니다.
개발자의 관점에서 말씀해 주시겠다라고 하셨습니다.
구글 어드센스의 성공, 애플의 앱스토어의 급성공을 예로 드셨고,
개방과 참여속에서 이루어진다 라는 말과
여기서 웹개발자는 뭘 해야 되는가? 의 질문에
범람하는 플렛폼 중에 WST ( web standard technology )
즉, 웹 표준기술 HTML/CSS/Javascript 에 충실해야 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다음 오페라 브라우저는 브라우저 기반 웹표준이다 ~ 라고 하셨구요 .
그래서 결론은~ !
결론..하던거 하십시오.. 후덜덜 하네요 ㅎㅎ
웹앱스콘을 다녀와서 1부는 여기까지 이고, 2부에서 계속 이어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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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Webappscon 2008 - 기술과 사람의 만남.
| 2008/10/24 14:51
2008.10.23(목) 신도림 테크노마트 11층 (강변역이 아닙니다!) 올해로 2회째를 맞는 가장 큰 웹 기술 컨퍼런스 Webappscon 2008 이 열리는 날입니다.Webappscon은 워크샵, 컨퍼런스, Launch Pad, Open Session , Lightning Talk 등정말 풍부한 프로그램으로 하루 종일 진행 됩니다. 또한 각 후원사 카페에서 다양한 이벤트에 참가하고 선물을 받는 행운도 누릴 수 있지요.그리고 가장 흥미로운 것은...
개요
사람마다 성격, 가치관, 선호, 개성 등이 다 틀리죠.
물론 개발자도 마찬가지겠죠?
IDE를 쓰냐 안쓰냐, vi 냐 Emacs냐, Windows 냐 Xnix 계열이냐..
위에 열거한 것들처럼 많은 의견과 자기 선호가 있습니다.
Font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종일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코드를 짤 때 가장 많이 보는 것이 Font 즉, 글꼴입니다.
대부분 개발자들은 자기가 선호하는 Font가 있습니다. ( 저 같은 경우는 맑은 고딕 & Monaco를 씁니다. )
Windows용 vim에서 맑은 고딕을 쓰기 위해 구글링 하던 도중, Finding the best Programmer`s Font 이라는 글을 보고
개발자들이 자기 선호 및 적당한 Font를 선택할 때를 위한 팁을 주고자 이 문서를 작성하였습니다.
ps - 위 링크의 정보에서 제공하는 것이 글쓴이의 개인적 선호가 묻어있는지, 통계로 인해 나온 결과인지, 신뢰도가 있는 곳에서 작성
되었는지에 대한 것들은 검증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쭉 읽어보시고,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
Good Programming Font Criteria - 프로그래머들을 위한 폰트 기준
- Crisp clear characters. - 또렷하고 깨끗한 문자들.
- Extended characterset. - 확장된 문자셋들.
- Good use of whitespace. - 여백의 적절한 활용.
- 'l', '1' and 'i' are easily distinguished - "l", "1" 와 "i" 문자의 식별이 쉬워야 한다.
- '0', 'o' and 'O' are easily distinguished - "0", "o" 와 "O" 문자의 식별이 쉬워야 한다.
- forward quotes from back quotes are easily distinguished -prefer mirrored appearance - 따옴표의 시작과 끝이 쉽게 구분 가능해야 한다. - 반사된 형태가 유리하다.
- Clear punctuation characters, especially braces, parenthesis and brackets - 구두점이 깨끗해야 된다, 특히 대,중,소 괄호
여기 내용을 번역해 봤습니다.
링크를 타고 들어가 보시면, 각 폰트 별로 순위를 매겨 놓았습니다.
아래 목록을 보고, 폰트를 선택하실 때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Fonts Reviewed (Best Listed First) (View All)(Name, Sizes, Type, Description, Download Info)
- Bitstream Vera Sans Mono (View Sample)
- 8, 9, 10, 11, 12, 14, 16, 18, 20, 22, 24, 26, 28, 36, 48, 72
- TrueType
- Plenty of space between lines, dotted zeros, clean.
- http://www.gnome.org/fonts/
- ti92pluspc (View Sample)
-
- TrueType
- Clear, Dark, slashed zeros.
- http://www.tamuk.edu/math/scott/stars/tutorial.htm
-
- Crystal (View Sample)
-
- TrueType
- Clear, Dark, slashed zeros.
- Availiable with free Povray software. http://www.povray.org/povlegal.html
-
- Monaco (View Sample)
- 8, 9, 10, 11, 12, 14, 16, 18, 20, 22, 24, 26, 28, 36, 48, 72
- TrueType
- Plenty of whitespace, slashed zeros, serifed i's.
- From Apple. http://www.pa.msu.edu/ftp/pub/misc/tek-phaser/ttfonts/MONACO.TTF or http://www.sttc.net.au/drivers/CLC/CLBP460/PS3FONTS/TRUETYPE/
- Anonymous (View Sample)
- 8, 9, 10, 11, 12, 14, 16, 18, 20, 22, 24, 26, 28, 36, 48, 72
- TrueType
- Less whitespace, slashed zeros, very clear.
- http://www.ms-studio.com/FontSales/anonymous.html
- Andale Mono (View Sample)
- 8, 9, 10, 11, 12, 14, 16, 18, 20, 22, 24, 26, 28, 36, 48, 72
- TrueType
- Tons of space between lines, dotted zeros.
- http://corefonts.sourceforge.net/
- Raize (View Sample)
- 10, 12, 14
- Bitmap
- Sharp, Legible, slashed zeros
- http://www.raize.com/DevTools/Tools/RzFont.zip
- ProFontWindows (View Sample)
- 8, 9, 10, 11, 12, 14, 16, 18, 20, 22, 24, 26, 28, 36, 48, 72
- TrueType or Bitmap
- Clean, slashed zeros, really wide.
- http://66.167.72.10/ProFontWindows.zip
- Sheldon (View Sample)
- 9
- Bitmap
- Plenty of whitespace, real clear, slashed zeros.
- http://www.tobias-jung.de/seekingprofont/
- BSU Kermit (View Sample)
- 9
- Bitmap
- Zeros Slashed, thin, spread out
- http://home.datacomm.ch/privmsg/havoc/mircscript.htm
- Lucida Sans Typewriter Regula (View Sample)
- 8, 9, 10, 11, 12, 14, 16, 18, 20, 22, 24, 26, 28, 36, 48, 72
- TrueType
- Zeros Not Slashed
- Available with free Java 2 SDK. http://java.sun.com/j2se/1.4.2/download.html
- Courier New (View Sample)
- 8, 9, 10, 11, 12, 14, 16, 18, 20, 22, 24, 26, 28, 36, 48, 72
- TrueType
- Lots whitespace between lines, no zero treatment.
- http://corefonts.sourceforge.net/
- Courier (View Sample)
- 10, 12, 15
- TrueType
- Clean but spread out, no zero treatment.
- Installed with Windows
- Lucida Consolev (View Sample)
- 8, 9, 10, 11, 12, 14, 16, 18, 20, 22, 24, 26, 28, 36, 48, 72
- TrueType
- Letters bunched, no zero treatment, clean text.
- http://corefonts.sourceforge.net/
- ProggyTiny (View Sample)
- 8
- Bitmap
- Really tiny, dotted zeros
- http://www.tactile3d.com/tristan/
- ProggyClean (View Sample)
- 8
- Bitmap
- Typeriter appearance, dotted zeros
- http://www.tactile3d.com/tristan/
- Fixedsys (View Sample)
- 9
- TrueType
- Really Dark, slashed zeros
- http://fixedsys.moviecorner.de
- Topaz-8 (View Sample)
- 8, 9, 10, 11, 12, 14, 16, 18, 20, 22, 24, 26, 28, 36, 48, 72
- TrueType
- Amiga Topaz-8. Little space between lines, slashed zeros, fat/squat text
- http://66.167.72.10/Topaz-8.zip
- Free Monospaced (View Sample)
- 8, 9, 10, 11, 12, 14, 16, 18, 20, 22, 24, 26, 28, 36, 48, 72
- TrueType
- Unreadable crap.
- http://ftp.gnu.org/savannah/files/freefont/
- MS Mincho (View Sample)
- 8, 9, 10, 11, 12, 14, 16, 18, 20, 22, 24, 26, 28, 36, 48, 72
- TrueType
- No Zero treatment, clear text
- Installed with Windows or Office. Try Google.
- Hyperfont (View Sample)
- 8, 9, 10, 11, 12, 14, 16, 18, 20, 22, 24, 26, 28, 36, 48, 72
- TrueType
- Thin, spread out, slashed zeros
- ftp://ftp.hilgraeve.com/pub/vendor/hilgraeve/hyprfont.zip
- Squareshooter Mono (View Sample)
- 8, 9, 10, 11, 12, 14, 16, 18, 20, 22, 24, 26, 28, 36, 48, 72
- TrueType
- Tons of room between lines, spread out,squarish, slashed zeros
- http://freefonts.fateback.com/hypotypo/
드디어 조엘 아저씨가 한국에 오네요 ㅎㅎ
내일 회사 안가고 웹앱스콘에 참가합니다 :)
( 다녀와서 사내 세미나 ..OTL )
조엘 스폴스키를 만나세요!

오는 10월 23일(목) 신도림 테크노 마트에서 개최될 국내 최대 웹 기술 커뮤니티 행사인'웹앱스콘 2008'에서 국내 S/W 개발자에게 잘 알려져 있는 조엘 스폴스키(Joel Spolsky, Fog Greek대표)가방한해 연사로 나서기로 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조엘 스폴스키는 '조엘 온 소프트웨어(Joel on Software)'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있으며 그의 책은 국내에서 베스트셀러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실질적이고 효율적인 개발 방법론에 대한 설명때문에 많은 개발자들 감동을 받았다.
컨퍼런스 참가자 대상 책 싸인회 도 진행!조엘은 이번에 다음커뮤니케이션의초청으로 방한하여 사내 행사인 Daum-Lycos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기조 발표를 한 후, 웹앱스콘에서도 국내 독자와 팬들과도만날 예정이다. 웹앱스콘에서는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웹애플리케이션 플랫폼과 기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발표한 후 그의 책을출판했던 에이콘 출판사와 책 사인회 이벤트도 같이 하게 된다.
조엘 스폴스키 소개
조엘은 S/W 개발 프로세스 분야에서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전문가로 블로그인 조엘 온소프트웨어(www.joelonsoftware.com)는 전 세계 개발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뉴욕에 위치한 FogCreek Software의 창립자로서, 소프트웨어 팀을 위한 유명한 프로젝트 관리 시스템인 FogBugz 를 만들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사에서 엑셀 팀의 멤버로 VBA 를 설계하기도 했고, 주노 온라인 서비스(Juno Online Services)에서 수백만명이 사용한 인터넷 클라이언트를 개발했었다.
저서로는 『User Interface Design for Programmers』 (Apress,2001)와 『조엘 온 소프트웨어-유쾌한 오프라인 블로그』(에이콘출판, 2005)가 있다. 예일대에서 컴퓨터과학 학사학위를받았고 대학 입학 전에 이스라엘 군대에서 낙하산부대원으로 복무한 독특한 경력도 소유한 조엘은 키부츠 하나톤(Kibbutz Hanaton)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Passenger는 Apache module 을 통해서 Rails Application의 배포 문제를 쉽게~ 아주 쉽게 해주죠.
설치는 ( Ubuntu 및 Debian 계열인 경우 )
이렇게 해주시면 됩니다.
보통은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없습니다만
이녀석으로 Passenger의 Apache module을 생성할때
명령어를 찾을 수 없다는둥 에러 메세지를 뱉어 날 때가 있습니다.
실제로 어제 작업을 하다가 이러한 상황을 겪었는데,
구글링을 해보니 gem installation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다고 하네요.
그럴 때는
sudo gem update --system으로 gem 자체를 update 한 뒤 rails 와 passenger 를 다시 설치해 주면 된다라고 합니다.
File Navigation 보기
-> 20vs ./ ( 숫자 부분을 수정해서 크기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
Gvim에서 toolbar, munubar 감추기
제가 조금 오덕스럽고.. 깔끔한걸 좋아해서 ㄷㄷ
-> 두개 다 감추시려면 set guioptions=Mt
두개 다 보이게 하며면 set guioptions=mT
툴바만 사라지게 하실려면, :set guioptions-=T , 나오게 하려면 :set guioptions+=T
메뉴바를 사라지게 하실려면, :set guioptions-=M , 나오게 하려면 :set guioptions+=M
으로 하시면 됩니다.
ESC 를 눌렀을때, 한글 해제
종종 코드를 작성하다, 파일을 저장하고 닫으려고 할 때, 'ㅂㅈ' 나 'ㅌ' 로 한글이 입력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ESC를 눌렀을 때 한글 해제 되도록 하면 작업하기 수월해 집니다.
inoremap <ESC> <ESC>:set imdisable<CR>
Eclipse에서 작업하다보면 Project Explorer 상에 폴더나 파일 뒤에 파일명 + 리비전 번호 (ex: test.jsp 12345 )로 표시가
됩니다.
작업을 하다보면 내가 언제 작업을 했고, 누가 커밋을 했는지에 대한 정보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보통은 History
perspective나 파일을 직접 열어서 확인을 하는데, Text Decorations 를 수정해 주시면
원하시는 정보가 파일명 뒤에
나오게 하실 수 있습니다. (ex: test.jsp 12345 2008-01-01 redrails )
우선 Window > Preferences에서
그림과 같이 decoration으로 검색하시거나, Team > SVN > Lable Decorations 로 찾아 신 뒤,
두번째 Tab Text Decorations를 선택합니다.
그림과 같이 Format 부분에 File, Folder, Project
부분에서 보여질 부분을 선택하시면 됩니다.
date는 최종 수정 날짜이고, authour는 마지막으로 커밋한 사람입니다.
그 외 필요하신 부분이 있으면 선택해 주시면 됩니다.
밑에 Preview 에서 바뀐 것들을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Outgoing flag나 Added flag 부분의
문자열도 바꾸실 수 있습니다.
17세기의 저명한 철학자이자 수학자, 물리학자인 라이프니쯔(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는 모나드론(Monadology) 이라는 독특한 사상을 발표하였다.
그것은, 우주는 무수한 단자(monad)로 이루어져 있고 개개의 단자 속에는 하나의 완전한 우주가 구현되어 있다는 사상이다.
이 아이디어를 잘 생각해 보면 그것은 우주의 프랙탈(fractal)구조를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하나의 입자가 그 속에 다른 또 하나의 완전한 우주를 담고 있다면 그 우주는 더욱 더 작은 무수한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고, 또 그 하나하나의 입자 속에는 또 다른 더 작은 우주가 재현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끝없이 반복될 것이며 따라서 이것을 프랙탈 구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우주가 프랙탈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진실이라면, 우리가 속해 있는 이 거대한 우주 또한 하나의 입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입자에 지나지 않는 세계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주와 같은 입자들이 무수히 많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모든 우주 입자들을 포함하는 거대한 존재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거대한 존재가 모든 것의 끝일 리가 없다.
그 거대한 존재 또한 그 보다 더욱 거대한 우주 속의 입자 하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프랙탈 구조 속에서는 이러한 과정 역시 끝없이 반복될 것이다.
프랙탈 구조로 된 우주에서는 '무한' 만이 유일한 답이 된다.
'무한'은 수평적으로 무한할 뿐만 아니라 수직적으로도 무한하다.
이와 같은 생각은 철학적인 관점에서는 상당히 평가될 만하지만, 그러나 과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공허한 말장난일 뿐이다 - 이제까지는......
그러나 이제 이 글에서 독자제위는 우주의 프랙탈 구조에 관하여 그 가능성을 엿보게 될 것이다.
프랙탈 구조
프랙탈 우주론에서는 우주를 본질적으로 하나의 입자라고 본다.
우주를 이루고 있는 무수한 입자들 속에는 또 다른 작은 우주가 재현될 것이다.
사람 역시 우주의 한 구성원이므로 프랙탈 우주는 사람을 중심으로 묘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우리가 속해 있는 저 우주는 어떤 거대한 사람의 내부에 있는 작은 입자이고 우리 우주와 같은 입자는 무수히 많을 것이다.
그 거대한 사람의 머리 위에는 또 다른 광대한 우주가 펼쳐져 있을 것이며 그 우주 또한 더욱 거대한 사람의 내부에 있는 하나의 입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몸은 무수한 작은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하나하나의 입자 속에는 아주 작은 사람들이 살고 있어 우리를 거대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나아가 그 작은 사람들 몸 속에는 더욱 더 작은 무수한 우주가 반복될 것이다.
만약 이 생각이 진실이라면 우리는 이것을 증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어쩌면 간단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닮은꼴의 개념으로 접근해 볼 수 있을 것같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여기 삼각형이 하나 있다.
이 삼각형을 복사기에 넣어 두 배로 확대시켜 보자.
이제 우리는 크고 작은 두 개의 삼각형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이 두 삼각형은 닮은꼴이다.
닮은꼴에서는 서로 대응하는 변의 비를 계산하면 항상 일정한 값을 보인다.
닮은꼴은 본질적인 동일성을 갖는다.
이 동일성은 간단히 증명된다.
만약 작은 삼각형을 두 배로 확대하든지 큰 삼각형을 반으로 축소하면 두 삼각형은 똑같게 된다.
둘을 구별하는 방법은 없다.
따라서 만약 두 삼각형이 닮은꼴임을 증명한다면 우리는 그 둘이 본질적인 동일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삼각형의 크기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한 삼각형을 점점 더 확대하고 다른 것은 점점 축소해 보자.
가령 큰 삼각형이 작은 것의 백만 배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 둘 사이에 존재하는 동일성에는 아무런 변화가 있을 수 없다.
그러면 한 삼각형을 이제 우주 크기만큼 확대하고 다른 삼각형은 소립자 크기로 축소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러한 경우에 있어서도 만약 우리가 그 두 삼각형의 서로 대응하는 변의 길이를 측정하여 비교할 수만 있다면 그 둘이 닮은꼴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이 논리는 단순한 만큼 별로 흠잡을 데는 없는 것같다.
만약 우리가 거대한 존재 내부의 한 개 입자인 우주의 모든 요소를 측정하고 우리 몸 속에서 그에 대응하는 입자를 찾아내어 그 입자의 모든 요소를 측정하여, 양자 사이에서 모든 대응요소들의 크기 비가 항상 일정함을 증명할 수 있다면 우리는 거대한 존재와 우리 자신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실체임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우주의 프랙탈 구조를 규명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주의 단계
거대한 존재 내부의 세계를 '거시세계'라 하고 우리 몸 속의 작은 세계를 '미시세계'라고 부르기로 하자.
그러면 소립자로부터 우주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단계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미시세계: 소립자 - (원자핵) - 원자 - 분자 - 고분자 - 세포내 소기관 - 세포 - 사람
거시세계: 별(태양) - (은하핵) - 은하 - 은하군 - 은하단 - 초은하단 - 우주 - 거대한 존재
상기 단계에는 우주의 모든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것 외에 하나의 단계로 분류할 만한 다른 특별한 요소는 없다.
만약 우주가 프랙탈 구조로 반복된다면 양 극단의 세계에서 서로 대응하는 요소들의 크기는 항상 일정한 비를 나타낼 것이다.
상기의 단계를 대강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 두 세계의 각 요소들이 정리된 순서대로 서로 잘 대응할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필자는 이 순서를 결정함에 있어서 각 요소들의 외관 및 동일요소 상호간의 간격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였다.
상기 체계에서 원자는 은하에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원자가 태양계와 비슷하다고 알고 있다.
이 생각은 원자의 고전적인 모델을 표현함에 있어서 전자들이 원자핵 주위를 돌고 있는 것으로 묘사한데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원자가 태양계와 닮았다는 것은 전혀 타당하지 않다.
가령 원자가 태양에 대응한다고 치자.
그러면 원자 사이의 거리 또한 태양 사이, 즉 별 사이의 거리에 대응해야 할 것이다.
물질계에서 원자는 대개 그 지름 정도의 거리를 두고 다른 원자와 연결되어 있다.
반면에 별과 별 사이의 거리는 수 광년으로서 별의 지름의 수 천만 배나 된다.
그러므로 원자가 태양에 닮았다는 생각은 전혀 고려할 가치가 없다.
그럼 상기의 체계를 주목해 보기로 하자.
편 차
그런데 우리가 어떤 두 물체의 크기를 비교하려고 할 때는 먼저 각각의 물체의 크기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듯이 상기 체계의 각 요소들의 확정적인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모든 요소들은 단일의 크기를 갖는 것이 아니라 모두 어느 정도의 범위내에 분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은하지름 : 10,000광년 - 100,000광년
우주 반지름 : 100억 - 300억 광년으로 추정됨
세포 지름 : 10미크론 - 100미크론
이와 같이 우주에는 확정적인 값을 갖는 요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물질계의 모든 요소들은 상당한 질서를 갖고 있다.
우주의 각 단계를 주의깊게 살펴보면 모든 단계에서 각 요소들의 최고치는 최저치의 10배 정도를 초과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필자는 각 단계에서 평균치를 구하여 비를 계산하고 그 결과에 10배의 편차를 용인하는 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혹자는 확정적인 크기를 갖지 않는 것을 서로 비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는 이것이 제한된 범위의 크기를 갖는 물체들을 서로 비교함에 있어서 상당히 정당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공간의 측면에서의 고찰
지금부터 각 대응요소들의 크기 비를 차례로 계산해 보기로 한다.
여기에 사용되는 모든 데이터는 현대과학의 산물이다.
목표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모든 대응요소들의 크기 비가 항상 일정한지 아닌지 확인하는 것이다.
먼저 [원자핵:은하핵]부터 시작하겠다.
[소립자:별]은 마지막에 계산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약간 복잡한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하는 어떤 계산에서는 해당 요소의 평균 반지름으로써 계산하는데, 그런 요소들은 대개 외관이 둥근 형태이고 비슷한 모양을 띠고 있다.
한편 어떤 계산에서는 지름 또는 일반적인 크기로써 계산하는데, 그런 요소들은 대개 외관이 불규칙적인 것들이다.
(1) 원자의 중심에서는 원자핵이 있다.
원자핵의 반지름은 원자 반지름의 약 10만분의 1, 즉 (10의 -13승)cm정도이다.
은하 또한 그 중심에는 은하핵이 있다. 은하핵의 크기는 지름 1광년을 넘지 않는다.
우리 은하계의 경우 그 지름은 약 0.65광년이다.
최근 퀘이사는 격렬하게 활동하는 은하핵으로 밝혀졌는데, 모든 퀘이사의 지름은 1광년을 넘지 않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은하계의 핵을 표준적인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면 은하핵의 평균 반지름은 0.33광년으로 결정된다.
원자핵 반지름: 은하핵 반지름 = (10의 -13승)cm : 0.33광년
= (10의 -18승)km : 3.12 x (10의 12승)km
= 1 : 3.12 x (10의 30승)
(2) 원자 반지름은 일반적으로 1Å, 즉 (10의 -8승)cm로 표시된다.
은하 지름은 10,000광년 내지 100,000광년 사이에 분포되어 있으므로, 그 평균 반지름은 30,000광년으로 잡을 수 있다.
원자 반지름 : 은하 반지름 = 1Å : 30,000광년
= (10의 -13승) km : 2.84 x (10의 17승)km
= 1 : 2.84 x (10의 30승)
(3) 분자의 종류는 너무나 많고 그 크기 또한 너무나 다양하므로 분자의 평균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작은 분자의 경우 그 모양을 구형(球形)이라고 간주할 때, 대개 지름 1Å에서 10Å 사이에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생체구조 속에서 표준적인 고분자는 단백질이다. 그리고 단백질은 아미노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생체구조 속에서의 표준적인 분자는 아미노산 분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단백질 구조의 대표적인 것은 알파 나선 구조인데, 이 구조 속에서 아미노산은 대개 지름 5Å의 크기를 갖는다.
그러므로 분자의 평균 지름으로는 5Å을 택하기로 하자.
수 개 내지 수 십 개의 은하가 모여서 은하군을 형성한다.
은하군의 평균 크기는 지름 약 150만 광년으로 관측되고 있다.
분자 지름 : 은하군 지름 = 5Å : 150만 광년
= 5 x (10의 -13승)km : 1.42 x (10의 19승)km
= 1 : 28.4 x (10의 30승)
(4) 생체조직 속에서 기초적인 생명물질은 단백질, 당, 핵산 등의 고분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고분자의 크기 또한 너무나 다양하여 그 평균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몹시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는 표준적인 고분자를 가려내어 그 크기를 평균 크기로 삼는 수 밖에 없다.
생체조직 속에는 단백질이 가장 많은 부분을 점하고 있으므로 단백질을 고분자의 간판으로 내세우기로 하자.
단백질 중에서 가장 전형적인 것은 약 200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200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단백질을 고분자의 표준형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단백질의 크기는 대략 300Å 정도이다.
원자들이 몇 개 결합하여 분자가 되고, 분자들이 모여서 고분자를 이룬다.
이런 과정은 거시세계에서도 꼭같이 반복되어, 은하들이 중력으로 결합하여 은하군을 형성하고 나아가 은하군들이 모여서 은하단을 이룬다.
은하단은 대개 50개 이상의 은하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범위는 약 천만 광년에 이른다.
고분자의 크기 : 은하단의 크기 = 300Å : 천만 광년
= 3 x (10의 -11승)km : 9.46 x (10의19승)km
= 1 : 3.15 x (10의 30승)
(5) 세포내의 실질적인 생명작용은 미토콘드리아, 미크로튜블, 골지체 등의 세포내 소기관에 의하여 수행된다.
그리고 이러한 소기관들은 바로 고분자들의 결합체이다. 이들은 대개 미크론 단위의 크기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세포내 소기관의 평균 크기를 5미크론으로 잡아두자.
이 계산에는 10배의 편차가 용인되어 있으므로 거의 대부분의 소기관들은 이 편차내에 포함될 것이다.
세포내 소기관이 세포의 마지막 단계이듯이, 우주에 있어서의 마지막 단계는 초은하단이다.
1980년이래 천문학자들은 거품 구조, 말뚝구조, 우주의 만리장성 구조 등 초은하단을 관측하고 있다.
이와 같은 초은하단의 규모는 수 억 광년에 이른다.
그러므로 초은하단의 평균 크기는 5억 광년으로 하자.
10배의 편차를 고려하면 대부분의 초은하단들이 이 편차 속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세포내 소기관의 크기 : 초은하단의 크기 = 5미크론 : 5억 광년
= 5x(10의 -9승)km : 4.73x(10의21승)km
= 1 : 0.95 x (10의 30승)
(6) 사람의 몸은 대략 60조 개 정도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세포의 모양은 대개 구형이며, 그 크기는 지름 10미크론 내지 100미크론 사이에 분포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포의 평균 반지름을 25미크론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우주의 반지름은 학자에 따라 100억 광년 내지 300억 광년 사이에서 조금씩 다르게 말해지기도 하지만, 현재로는 150억 광년이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주 반지름은 150억 광년으로 하자.
세포 반지름 : 우주 반지름 = 25미크론 : 150억 광년
= 2.5 x (10의 -8승)km : 1.42 x (10의 23승)km
= 1 : 5.68 x (10의 30승)
극미 입자
이제 끝으로 [소립자 : 별]을 계산할 차례다.
은하 구조 속에서 별들은 은하 중심 주위를 돌고 있다.
원자 구조 속에서 전자들은 원자핵 주위를 돌고 있다.
혹은, 양자론에서는 전자들이 원자 핵 주위에 확률분포되어 있다고 표현한다.
우리가 만약 이 둘이 프랙탈 우주 속에서 서로 대응한다고 말한다면, 곧 그 현격한 상위점을 알아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은하 속에는 예를 들어, 우리 은하계에는 2,000억 개 이상의 별이 포함되어 있는 반면에 원자 속에 포함된 전자의 수는 불과 몇 개 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소 원자는 1개의 원자를 가질 뿐이며 탄소는 6개, 질소는 7개, 산소는 8개, 그리고 매우 큰 원자량을 갖는 우라늄조차도 불과 92개의 전자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필자는 전자에 관한 한가지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고자 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은하 구조 속에서 별들은 멋대로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나선팔을 형성하고 있다.
필자는 전자 또한 은하의 나선팔과 같은 형태를 띠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전자는 단순한 하나의 입자가 아니라 무수한 극미입자들로 이루어진 벨트 형태의 물질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다음의 이야기로써 분명해 질 것이다.
최근 물리학자들은 전자의 실제 반지름을 관측하는 데 성공하였다.
전자의 반지름은 이제까지 양자전기역학상의 계산에 의하여 약 (10의 -16승)cm라고 알려져 왔으나, 실제로 관측된 전자의 반지름은 (10의 -20승)cm이하였다.
전자의 반 지름을 실측함으로써 이제 우리는 전자에 대한 개념을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전자의 반지름이 (10의 -20승)cm라면 그 체적은 (10의 -60)cm이다.
전자의 질량은 약 (10의 -27)g이다. 따라서 전자의 질량밀도는 (10의 33승)g/㎤가 된다.
일반적으로 전자는 가벼운 입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제 전자의 반지름이 (10의 -20승)cm보다 작다는 것이 확인됨으로써 전자가 가벼운 입자라고 하는 개념은 수정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전자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것은 무거울 뿐 아니라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겁다고 할 수 있다.
전자를 중성자와 비교해 보자.
중성자는 일반적으로 무거운 입자로 알려져 있다. 중성자의 반지름은 대략 (10의 -13승)cm이다.
그러므로 중성자의 체적은 (10의 -39승)㎤이다. 한편 중성자의 질량은 대략 (10의 -24승)g이므로, 그 질량밀도는 (10의 15승)g/㎤ 정도가 된다.
다이아몬드는 왜 무거운 물질이라고 하는가?
그것은 다이아몬드의 질량밀도가 높기 때문이다. 전자의 질량밀도 (10의 33승)g/㎤은 중성자의 질량밀도 (10의 15승)g/㎤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높다. 이제 우리는 결코 전자가 가벼운 입자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왜 전자의 질량밀도는 이토록 높은가?
전자가 단순한 점입자라는 개념으로써는 이 의문에 답하기 어렵다.
그러나 전자가 하나의 입자가 아니라 무수한 극미입자로 이루어진 벨트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원자 구조 속에서 전자의 벨트는 초속 250km라는 비교적 느린 속도로 원자핵 주위를 돌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것은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매초 수 백조 바퀴씩 도는 속도이므로, 우리는 도저히 원자 구조 속에 있는 전자를 관측할 방법이 없다.
전자를 관측하려면 원자 구조 밖으로 전자를 끌어내어야 한다. 전자가 원자 구조 밖으로 나오면 광속도로 운동한다.
이렇게 되면, 원자 구조 안에서 다소 느슨하게 흩어져 있던 극미입자들은 일렬로 늘어서서 광속으로 달려갈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극미입자들은 일점을 통과하게 될 것이다.
결국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것은 전자의 크기가 아니라 전자를 이루고 있는 극미입자의 크기일 것이다.
한 개의 극미입자의 범위에 모든 극미입자들이 집중될 때 전자의 질량밀도가 그토록 높게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태양은 우리 은하계에서 표준적인 크기를 갖는 별로서, 그 반지름은 약 70만km이다.
이제 우리는 [소립자 : 별]을 [극미입자 : 태양]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극미입자의 반지름 : 태양 반지름 = (10의 -20승)cm : 7 x (10의 5승)km
= (10의 -25승)km : 7 x (10의 5승)km
= 1 : 7 x (10의 30승)
이상으로써 거시세계와 미시세계 사이의 서로 대응하는 모든 요소들의 크기 비를 계산해 보았다.
우리는 모든 대응요소들의 비가 비슷함을 알 수 있고, 그 비례상수는 (10의 30승)임을 알게 되었다.
이상의 계산 중에서 [분자 : 은하군]의 값이 다른 값에서 약간 벗어남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분자의 평균적인 크기를 결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10배의 편차를 고려하면 그것도 그다지 나쁜 결과는 아니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일 뿐인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어떤 사실을 예측하고 그것이 그대로 일어난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적인 결과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이 글에서 독자제위는 그러한 필연적인 결과를 더 보게 될 것이다.
만약 이 모두가 단지 우연의 연속일 수가 없는 것이라면, 우리는 우주가 프랙탈 구조로 수직적으로 연속되며 프랙탈의 각 단계 사이의 배율은 대략 (10의 30승)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의 우주가 한 개의 입자에 불과한 거대한 존재는 사람의 키보다 (10의 30승)배나 크고, 사람은 우리 몸의 세포 속에 살고 있을 아주 작은 존재보다 (10의 30승)배 더 큰 것이다.
우주는 그것이 비록 하나의 세포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 자신이 거대한 존재 내부의 미시세계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크게 보인다.
마찬가지로, 우리 몸 속 또 다른 미시세계에 살고 있을 작은 존재들은 우리의 세포를 그들의 계산으로 반지름 150억 광년의 거대한 우주로 여기며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우리의 우주가 포함된 거대한 존재가 무엇일지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거대한 존재의 세포 속에 살고 있어 그 존재의 전체를 절대로 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먼 훗날 천문학자들이 우주 속에 분포된 모든 은하들의 완벽한 3차원 지도를 그려낼 수만 있다면 DNA에 해당되는 초은하단을 분석하여 그 정체를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까지는 그 거대한 존재를 그냥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해 두자.
시간의 측면에서의 고찰
우주에 있어서 시간은 공간과 함께 또 하나의 본질적인 요소이다.
물리학자들은 시간을 제 4의 축으로 정의하고 우주를 4차원 시공간으로 해석하고 있다.
시간이 현실적인 축인가에 대하여는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필자는 여기서 시간에 대한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를 밝히고자 하지는 않겠다.
필자는 다만 프랙탈 구조의 우주 속에서 시간이 어떻게 구현되는가를 밝혀보려고 한다.
독자제위가 이미 본 대로 프랙탈 우주론의 논리는 매우 단순하다.
프랙탈 우주를 지배하는 시간의 논리 또한 매우 단순하다. 그러나 시간의 그 단순성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시간의 원리에 보다 쉽게 접근하기 위하여 간단한 예를 먼저 들어보겠다.
여기에 100미터 트랙을 가진 운동장이 있고 키 180cm의 선수가 출발선에서 달려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자.
그는 100미터를 10초에 주파할 수 있다고 해두자.
그리고 이번에는 어떤 마술에 의해 모든 치수가 10분의 1로 축소된 세계를 상상해 보자.
그 작은 세계에서는 사람도 운동장도 모두 10분의 1로 축소되었기 때문에 축소된 사람에게는 축소된 운동장이 여전히 100미터로 보일 것이다.
이제 정상세계의 운동장과 축소된 운동장을 출발선이 같도록 나란히 놓고 두 선수에게 각자 자기의 운동장 끝을 향하여 달려나가게 했다고 생각하자.
이 경우, 축소된 운동장의 선수가 결승점에 도착하여 자기 시계를 보았을 때 그는 당연히 자기 시간으로 10초가 경과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세계에서는 그 자신도 운동장도 그리고 그를 둘러싼 모든 환경도 10분의 1로 축소되었고, 그가 가지고 있는 시계 또한 축소된 세계의 시간을 나타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상세계에서 볼 때 축소된 운동장의 길이는 10미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정상세계의 선수가 축소된 운동장의 결승점과 동일한 지점을 통과하는 데는 1초 밖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때 두 선수가 서로 상대편의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가정하면, 정상세계의 선수는 축소된 운동장의 선수가 매우 잽싸게 바삐 달리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며, 반대로 축소된 운동장의 작은 선수는 자기 옆에서 자기 보다 키가 열 배나 큰 거인이 마치 비디오 필름을 10분의 1의 속도로 돌리는 것처럼 느릿느릿 달리는 모습을 볼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가? 그것은 시간의 흐름이 공간의 크기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즉, 10분의 1로 축소된 세계에 사는 사람은 시간의 흐름을 10배 길게 느낀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정상세계의 1초는 10분의 1로 축소된 세계의 사람에게 10초로 경험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주의할 점은, 축소된 세계의 사람이 시간의 흐름을 길게 느낀다는 것은 실제로 시간이 길어진다는 말이 아니고, 단지 그에게는 시간이 미분화되어 그 흐름을 천천히 경험한다는 의미이다.
이 원리는 공간이 100분의 1, 천분의 1, 백만분의 1, 나아가 (10의 30승)분의 1로 축소되더라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우주가 [1 : (10의 30승)]의 비를 갖고 프랙탈 구조로 반복되는 것이 사실이라면 시간의 흐름도 역시 같은 비로 변화할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의 우주 속에서 (10의 30승)초라는 기나긴 시간이 흘러가도 그것은 거대한 존재에게는 단지 초침이 째깍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반면에 우리의 1초는 우리 몸 속의 미시세계에 사는 작은 존재들에게 (10의 30승)초라는 기나긴 시간으로 미분화되어 나타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프랙탈 우주 속에서의 시간의 원리이다.
그러나 과연 이것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
시간의 비밀
시간의 비밀은 은하의 운동 속에 감추어져 있다.
은하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다시 한 번 보자. 그것들은 마치 격렬하게 회전하는 물체의 정지 화면과도 같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은하는 그 중심 주위를 회전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한바퀴 도는 데는 약 2억 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된다.
은하들의 외관은 그토록이나 격렬하게 소용돌이치는 모습인데 실제의 회전주기는 왜 그처럼 길까?
그 까닭은 우리가 실제로는 거대한 존재의 세포 속 미시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거대한 존재의 1초는 우리 세계에서 (10의 30승)초의 시간으로 나타나므로, 우리에게 2억 년이라는 긴 세월조차 그에게는 그야말로 한 순간에도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우리가 보는 은하를 원자로 인식할 것이므로, 은하의 회전주기 또한 그에게는 원자의 회전주기로 측정될 것이다.
우주는 프랙탈의 각 단계마다 같은 배율로 반복될 것이므로, 그가 측정하는 원자의 회전주기는 우리가 측정하는 원자의 회전주기와 동일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럼 프랙탈 우주론에서의 시간의 원리를 토대로 원자의 회전주기를 계산해 보겠다.
어떤 독자는 지금 필자가 하고자 하는 것이 터무니없는 일일 뿐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실제 이런 종류의 계산은 물리학에서 양자역학의 분야에 속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자제위는 우주의 어떤 현상이라도 프랙탈 우주론을 바탕으로 논리적인 해석이 가능함을 곧 이해하게 될 것이다.
프랙탈 우주론에 의하면, 시간의 흐름은 공간의 크기에 비례하여 변화한다.
따라서 원자의 회전주기와 은하의 회전주기의 비는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원자의 회전주기 : 은하의 회전주기 = 원자 반지름 : 은하 반지름
우리는 이미 앞에서 [원자 반지름 : 은하 반지름]의 값을 계산한 바 있다.
은하의 회전주기로는 2억 년을 채택하기로 하자.
실제로는 은하의 회전주기가 은하내의 각 지점에 따라 달리 나타나지만, 10배의 편차를 고려에 넣으면 2억 년이라는 수치는 은하내의 위치에 관계없이 통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위의 비례식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χ : 2억 년 = 1 : 2.84 x (10의 30승)
χ : 6.31 x (10의 15승)초 = 1 : 2.84 x (10의 30승)
∴χ = [6.31 x (10의 15승)] ÷[2.84 x (10의 30승)] = 2.22 x (10의 -15승)초
프랙탈 우주론의 시간 원리에 따라 계산한 원자의 회전 주기는 2.22 x (10의 -15승)초이다.
이제 이것을 물리학의 테이터와 비교해 보자.
덴마크의 물리학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닐스 보어(Niels Bohr : 1889-1962)는 원자 구조를 규명함에 있어서 최초로 양자론을 적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이론은 비록 고전적이기는 하지만 수소 원자에 적용할 경우 실제 관측치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보어의 이론을 수소 원자에 적용할 경우, 양자수 2 일 때 원자의 회전 진동수는 매초당 8.2 x (10의 14승)회이다.
이것으로써 원자의 회전주기를 계산하면 1.22 x (10의 -15승)초라는 답이 나온다.
놀랍지 않은가? 우주가 프랙탈 구조로 되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토대로 구한 원자의 회전주기가 양자역학상의 계산 결과와 거의 일치하고 있다.
참고로, 원자의 회전주기는 양자수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 양자수 2는 원자의 스펙트럼 중 가시광선부에 해당된다. 우리는 은하의 회전주기를 가시광선을 통해 관측하므로 원자의 회전주기 역시 가시광선부, 즉 양자수 2일 경우를 취해야 할 것이다.
또 원자의 회전주기는 원자의 종류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만, 10배의 편차가 용인되는 이 계산에서 그런 정도의 차이는 무시해도 좋을 것이다.
원자의 회전에 관한 물리 이론의 결과와 프랙탈 우주론의 결과 사이의 놀라운 일치는 이 새로운 우주론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우주는 프랙탈 구조로 이루어지고, 시간은 공간의 크기에 비례하여 변화하는지도 모른다. 인류가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알기를 갈망해 왔던 시간과 공간의 비밀이 바로 이것일지도 모른다.
안드로메다 은하와 분자진동
프랙탈 우주론은 단순한 논리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이 이론은 합당한 데이터가 존재하는 한 우주의 어떤 현상에도 쉽게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 새로운 사상의 재검토를 위하여 다른 예를 또 하나 들어보겠다.
분자는 몇 개의 원자가 결합하여 만들어지는데, 그 결합력은 원자간 인력이다. 몇 개의 은하들이 모여서 은하군을 형성한다.
은하군이라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힘은 은하들의 중력이다.
프랙탈 우주론에서 분자와 은하군은 서로 대응하므로 양자의 특정 운동속도의 비는 당연히 [1:(10의 30승)]을 나타낼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분자 구조 속에서 원자들은 상호 진동함과 동시에 분자 전체의 인력 중심주위를 회전하고 있다.
분자의 운동에 있어서, 표준적인 진동수는 매초당(10의 13승)회이며 표준적인 회전수는 매초당 (10의 11승)회이다.
이러한 분자의 운동은 물론 분자의 종류에 따라, 그리고 동일 분자라도 그 위상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
그러나 이 표준운동치는 10배의 편차를 고려하여 거시세계의 운동과 비교함에 있어서 충분한 타당성을 갖는 수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분자의 진동주기는 (10의 -13승)초, 그 회전주기는 (10의 -11)초로 표시될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운동을 비교해 보면 진동운동이 회전운동보다 100배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원자들은 전체 인력 중심 주위를 한바퀴 도는 동안에 서로간에 100번 진동한다.
말하자면, 원자들은 매번 진동할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인력 중심 주위를 이동하고 100번의 진동이 행해진 시점에서 한바퀴의 회전을 마치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원자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다고 가정하면 눈에 띄는 원자의 운동량은 거의 진동운동에 의한 것이 될 것이다.
은하군들은 모두 우리에게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은하군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은하들 사이의 상대적인 운동에 대하여 자세하게 관측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데이터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은하군은 우리 은하계가 속해 있는 국부은하군일 것이다.
국부은하군은 이 우주 속에서 별스러운 은하군이 아니므로, 우리는 국부은하군의 운동을 표준적인 것으로 간주해도 무방할 것이다.
은하군 속에서 은하들은 전체 중력 중심 주위를 공전한다.
안드로메다 은하는 국부은하군에서 우리 은하계의 맞은 편에 위치하고 있는데 현재 우리를 향하여 초속 50km의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천문학자들은 안드로메다 은하가 은하군의 중력 중심 주위를 공전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로 접근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프랙탈 구조의 우주에서 은하군은 분자에 대응한다.
따라서 은하군 속의 은하들도 분자 속의 원자들처럼 진동운동과 회전운동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진동운동은 회전운동 보다 100배 빨리 행해질 것이므로, 우리가 관찰하는 은하들의 운동량은 거의 진동운동에 기인할 것이다.
따라서 안드로메다 은하의 접근속도는 그 진동속도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 은하계와 안드로메다 은하는 국부은하군의 양쪽에 자리잡고 있는 중심 은하들이다.
안드로메다 은하가 우리에게로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은하계 역시 안드로메다 은하쪽으로 이동하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함축한다.
그러므로 안드로메다 은하의 진동운동은 현재의 위치에서 국부은하군의 중심까지 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양 은하 사이의 거리는 250만 광년이므로, 안드로메다 은하가 한번 진동하는 데 이동하는 거리 또한 250만 광년이 될 것이다.
이제 250만 광년을 안드로메다 은하의 접근속도 초속 50km로 나누어주면 그 진동주기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250만 광년 ÷ 50km/sec
= (2,500,000 x 365 x 24 x 60 x 60 x 300,000km) ÷ 50km/sec
= 4.73 x (10의 17승)초
∴ 분자의 진동주기 : 국부은하군의 진동주기
= (10의 -13승)초 : 4.73 x (10의 17승)초
= 1 : 4.73 x (10의 30승)
결 언
이 글에서 필자는 현대과학의 여러 데이터를 사용하여 프랙탈 우주론을 피력하였다.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는 공간과 시간의 모든 면에 걸쳐서 1 : (10의 30승)이라는 비로써 대응하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미시세계와 거시세계의 각 대응요소들의 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극미입자 반지름 : 태양반지름 = (10의 -20승)cm : 7 x (10의 5승)km
= 1 : 7 x (10의 30승)
② 원자핵 반지름 : 은하핵 반지름 = (10의 -13승)cm : 0.33광년
= 1 : 3.12 x (10의 30승)
③ 원자반지름 : 은하반지름 = 1옹스트롬 : 3만 광년
= 1 : 2.83 x (10의 30승)
④ 분자지름 : 은하군 지름 = 5옹스트롬 : 150만 광년
= 1 : 28.4 x (10의 30승)
⑤ 고분자의 크기 : 은하단의 크기 = 300옹스트롬 : 천만 광년
= 1 : 3.15 x (10의 30승)
⑥ 세포내 소기관의 크기 : 초은하단의 크기 = 5미크론 : 5억 광년
= 1 : 0.95 x (10의 30승)
⑦ 세포 반지름 : 우주 반지름 = 25미크론 : 150억 광년
= 1 : 5.68 x (10의 30승)
⑧ 원자의 회전주기 : 은하의 회전주기 = 2.22 x (10의 -15승)초 : 2억 년
= 1 : 2.84 x (10의 30승)
⑨ 분자의 진동주기 : 국부은하군의 진동주기 = (10의 -13승)초 : 4.72 x (10의17승)초
= 1 : 4.73 x (10의 30승)
인류사회는 우주의 본질을 규명하기 위해 엄청난 자금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풀고자 하는 궁극적인 화두이기 때문이다.
이제 과학자들은 거시세계와 미시세계를 철저히 대응시켜 분석함으로써 우주의 무한중첩성을 확인하고 우주의 진정한 질서를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빅뱅이론 비판
현대 우주론의 정설은 태초에 초고밀도의 입자가 대폭발을 일으키고(=빅뱅 Big Bang) 광속도로 팽창하고 있다는 빅뱅 이론과 이를 보완한 인플레이션 이론이다.
이 이론은 우주의 시작을 설정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갖게 되는 유한 우주론이므로, 우주의 무한성을 나타내는 프랙탈 우주론을 이해하면 그것은 별 의미가 없는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빅뱅 이론은 프랙탈 우주론과 연계시키지 않더라도 현재까지 밝혀진 천문학 자료만으로써 간단히 그 허구성을 증명할 수 있다.
빅뱅 이론에 대한 현대인들의 환상을 깨뜨리기 위해 다음 글을 첨부한다.
태초에 초고밀도의 작은 입자가 대폭발하여 공간으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팽창우주론과 우주는 항상 현재와 같은 모습대로 존재해 왔다는 정상우주론의 대결은, 이미 예언된대로 대폭발 당시의 빛의 화석이라 할 수 있는 우주배경복사가 1964년에 발견됨으로서 팽창우주론의 완벽한 승리로 끝난 것처럼 보인다.
이제 정상우주론은 자취를 감추었고 팽창우주론은 현대 과학계의 교조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빅뱅론자들은 자신들이 중대한 상식적인 모순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지구는 태양주위를 공전하고 있다. 태양계내의 행성들은 이와 같은 태양과의 인력에 의하여 태양주위를 공전하며 하나의 운동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러한 공전운동은 끝없이 계속되고 있다.
만일 행성들이 태초이래 아직 태양을 한 바퀴도 채 돌지 않았다고 한다면, 우리는 행성이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고 말할 수 없고, 따라서 『태양계』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국부은하군의 은하들이 공전운동을 하며 하나의 운동계를 이루고 있다면, 그와 같은 공전운동은 기나긴 우주의 역사 속에서 무수히 되풀이 되어 왔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빅뱅 우주론에 따르면 우주의 역사 즉, 최초의 대폭발로부터 현재까지 경과한 시간은 약 백억 년 내지 백오십 억년이라고 한다.
은하가 1회 자전하는 데는 약 2억년 걸리므로, 이 기간동안 은하는 대략 50회 남짓 공전한 것으로 된다.
고속으로 회전하는 형상을 띠고 있는 은하의 모습치고는 이 수치는 마음이 쓰일 정도로 작다.
은하들은 자축주위로 회전하면서 은하군의 인력중심 주위를 공전하고 있다.
우리 은하계가 포함되어 있는 국부은하군은 은하계와 크기 및 형태가 비슷한 안드로메다 은하와 기타 20여개의 중소은하들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 은하계로부터 안드로메다 은하까지의 거리는 약 2백50만 광년이다.
안드로메다 은하는 우리 은하계쪽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그 시선 속도는 초속 약 250km이다.
그러나 태양계가 은하계 중심주위를 공전하고 있는 효과를 감안하면 실제로 안드로메다 은하는 국부은하군의 중심을 향하여 초속 약 50km로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계산된다.
따라서 안드로메다 은하가 현재의 위치에서부터 국부은하군의 중심주위를 한 번 공전한 뒤 본래 위치로 돌아갈 때까지의 직선 이동거리는 약 5백만 광년이 된다.
이 5백만 광년의 거리를 초속 50km로 이동하므로, 이로써 안드로메다 은하의 공전주기를 계산해 낼 수 있다.킬로미터 단위로 표시하면,
300,000km x 60 x 60 x 24 x 365 x 5,000,000 = 4.73 x (10의 19승)km
이것을 50km로 나누면,
[4.73 x (10의 19승)]÷ 50 = 9.46 x (10의 17승)
9.46 x (10의 17승)초를 년 단위로 환산하면,
[9.46 x (10의 17승)] ÷ (60x60x24x365) = 30,000,000,000년
즉, 안드로메다 은하의 공전주기는 300억 년이다.
이 계산은 빅뱅 우주론이 허구임을 극명하게 나타낸다.
빅뱅 우주론을 따른다면, 우리 은하계가 속한 국부은하군은 우주의 전 역사 동안 아직 한바퀴의 공전도 완료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된다.
우리의 국부은하군 뿐만이 아니다.
이 우주 안에 있는 2천억개가 넘는 모든 은하들은 제각각 은하군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 모든 은하군들이 아직 제일 첫회의 공전도 끝내지 못한 상태에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말은 은하군은 공전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가 되며, 공전운동을 하지 않는 은하들이 모두 은하군이라는 시스템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천문학상 명백한 모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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